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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족보에 사용되는 용어(7) - 묘소. 사당
작성자 관리자 [2019-01-24 17: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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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 소

묘소(墓所)란 분묘의 소재지를 말하는 것으로 족보에는 '묘()'자만을 기록하고, 좌향(坐向 : 묘가 위치한 방향)도 기록한다. 석물(石物)이 있을 경우에는 이를 표시하며 합장의 여부도 기재한다.

(: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와 비(: 어머니 또는 할머니)의 묘지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별도로 기록하게 되지만 같은 장소인 경우는 함께 기록하고, 동원(同原) 혹은 누구의 묘좌(墓左), 묘우(墓右), 묘하(墓下) 등으로 기록한다.

산소가 같은 장소에 있으나 방향만 다른 경우는 그 묘의 방향을 기록한다.

부부가 함께 묻혀 있는 묘는 합봉(合封), 합장(合葬), 합폄(合窆), 합묘(合墓) 등으로 부른다. 쌍분(雙墳), 쌍봉(雙封), 쌍묘(雙墓) 등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있는 묘를 일컫는 말이다.

합장이나 쌍분이나 산 아래를 향해 남자는 오른쪽에, 여자는 왼쪽에 묻히게 된다.

()은 언덕이라는 뜻이다. 지명이나 마을 이름, 또는 산 이름을 쓰고 다음에 '×이라 했을 때는 마을이나 산으로부터 어떤 방향에 있는 언덕이라는 의미가 된다.

묘의 좌향(坐向)은 시신이 누워 있는 방향을 가리키므로 묘의 방향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시신이 앉아서 바라보는 방향은 다리쪽, 즉 묘의 앞쪽이고 다리와 반대쪽은 머리인데 묘의 뒤쪽이 된다. 머리 쪽은 좌()이고 다리 쪽은 향()이다.

 

묘 계

묘계(墓界)는 무덤의 구역으로 품계에 따라 무덤을 중심으로 하여 1품은 사방 100, 2품은 90, 3품은 80, 4품은 70, 5품을 50, 생원과 진사는 40, 그리고 서민은 10보로 제한하였다.

 

묘 표

묘표(墓表)는 표석(表石)이라고도 하며 죽은 사람의 관직(官職)과 호()를 앞면에 새기고, 뒷면에는 사적(事蹟)이나 비석을 세운 날짜와 비석을 세운 자손들의 이름을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을 말한다.

 

묘 지

묘지(墓誌)는 지석(誌石)이라고도 하며, 천재지변이나 오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묘를 잃어버릴 것에 대비한 것이다. 금속판이나 돌, 도판(陶板)에 죽은 사람의 원적(原籍)과 성명, 생년월일, 행적, 묘의 위치 등을 새겨서 무덤 앞에 묻었다.

 

묘비와 비명

무덤 앞에 세우는 비석의 총칭을 묘비(墓碑)라 하며 비명(碑銘)은 비에 새긴 글로서 명문(銘文), 비문(碑文)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고인의 성명, 본관, 원적, 행적, 경력 등의 사적(事蹟)을 서술하여 적었다.

 

신 도 비

신도비(神道碑)는 임금이나 높은 관직에 있던 사람의 무덤 앞이나 길목에 세워 죽은 사람의 사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대개 무덤 동남쪽에 위치하며 남쪽을 향하여 세우는데 신도(神道)라는 말은 죽은 사람의 묘로(墓路), 즉 신령(神靈)의 길이라는 뜻이다.

원래 중국 한()나라에서 종2품 이상의 관리들에 한하여 세우던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3품 이상의 관직자의 묘에 세웠던 것으로 보이지만 현존하는 것은 없으며, 조선시대에는 2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세우는 것을 제도화하였다.

왕의 신도비로서는 건원릉(建元陵)의 태조 신도비와 홍릉(洪陵)의 세종 대왕 신도비가 남아 있으며, 문종은 왕릉에 신도비를 세우는 것을 금지하여 그 이후에는 왕의 신도비는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묘 갈

묘갈(墓碣)은 신도비와 비슷하지만 3품 이하의 관리들 무덤 앞에 세우는 머리부분이 동그스름한 작은 돌비석으로 신도비에 비해 그 체제와 규모가 작고 빈약하였다.

중국에서는 진()나라에서 비롯되었으며 당나라에서는 5품 이하의 관리들의 무덤 앞에 세워졌다.

 

사 당

사당(祠堂)은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곳으로 가묘(家廟)라고도 한다.

고려 말엽 정몽주, 조준 등이 시행을 역설하였으나 불교가 성행하던 때인지라 시행되지 못하다가 주자학을 정교(政敎)의 근본으로 삼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시행되었으며 그 근원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한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일부 사대부가에서만 시행하다가 선조 이후부터 일반화되어 서민들도 사당을 갖기 시작하였다.

사당에는 3년상을 마친 신주를 모셨는데, 집을 지으려면 반드시 사당을 먼저 세워야 했다. 그 위치는 정침(正寢) 동쪽이었으며 3간으로 세워 앞에 문을 내고 문 밖에는 섬돌 돌을 만들어 동쪽을 동계(東階), 서쪽을 서계(西階)라 하여 모두 3계단으로 하였다.

사당 안에는 4(: 신주를 모셔놓는 장)을 설치하여 4대조를 봉안하며, 감의 밖에는 장()을 드리우며 각 위패마다 제상(祭床)을 놓고 그 위에 촛대 한 쌍씩을 놓으며 최존위(最尊位)의 위패 앞에는 향상(香床)을 놓았다.

 

<출처 - 족보나라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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