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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족보에 사용되는 용어(5) - 사손. 양자. 관직
작성자 관리자 [2019-01-24 17: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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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손(嗣孫)과 사손(祀孫)

사손(嗣孫)이란 한 집안의 종사(宗嗣), 즉 계대(系代)를 잇는 자손을 말하며, 사손(祀孫)이란 봉사손(奉祀孫)의 줄임말로 조상의 제사를 받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후사와 양자

후사(後嗣)란 뒤를 잇는다는 뜻으로, 계대(系代)를 잇는 자손을 말한다. 계대를 이을 후사가 없을 경우 무후(无后), 양자(養子)로 출계(出系)하였을 때는 출후(出后), 서얼(庶孼 : 첩의 자손)로서 입적(入嫡 : 적자로 들어옴)되었을 경우에는 승적(承嫡 : 서자가 적자로 됨), 후사가 확실치 않아 확인할 수 없을 때는 후부전(后不傳) 등으로 그 사유를 보첩의 이름자 밑에 작은 글씨로 표시한다.

옛날에는 양자로써 계대를 승계하려면 예조(禮曹)에 청원하여야 했는데 자손은 하늘이 점지한 것이라 하여 예조에서 입안한 문서를 동지사(冬至使)가 중국 황제에게 가져가면 황제가 하늘에 사유를 고한 다음에야 예조에서 허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허가를 받지 않고 출계하기도 했다.

장남은 양자로 출계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관 계

관계(官階)란 관리의 계급이란 뜻으로 품계(品階), 또는 위계(位階)라고도 하였다.

고려 때에는 문관의 계급을 문산계(文散階), 무관의 계급을 무산계(武散階)라고 하였다. 그후 시대에 따라 다소의 변화가 있었으나 1품부터 9품까지로 크게 나누고, 각 품계를 정()과 종()으로 나누었다. 같은 품계라도 정이 위, 종이 아래다. 정과 종을 다시 상()과 하()로 세분하였다.

각 계급에는 각각 그 계급을 나타내는 명칭이 붙어 있었으며, 이 명칭을 관계라 하였다.

관계는 문관과 무관, 종친(宗親)과 의빈(儀賓), 내명부(內命婦)와 외명부(外命婦), 토관직(土官職)과 잡직(雜職) 등에 따라 명칭이 각각 다르다.

관리에 임명됨과 동시에 계급이 정해졌으며, 그 계급에 따라 관직이 정해졌다. 그러므로 관계와 관직은 항상 따라 다니는 것이었다. 관계를 받은 남편의 부인에게는 남편의 관계에 해당하는 계급인 외명부의 작호(爵號)가 봉작(封爵)되었다.

 

관 직

관직은 관아와 직함이란 뜻이고, 또 관계와 관아와 직함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기도 한다.

 

관아(官衙)와 직함(職銜)

관아는 관부(官府)라고도 했는데, 관리가 사무를 보는 곳으로 지금의 관청과 같은 의미다.

직함은 담당한 직책의 이름이다.

 

실직(實職)과 증직(贈職)

관직에는 실직과 증직이 있었다.

실직은 살아 있을 때 실제로 임명된 관직으로 관아 이름과 직책 이름을 합쳐 부른다. 예를 들면 동경유수(東京留守),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문하시중(門下侍中) 등으로, 이는 동경의 유수, 상서성의 좌복야, 문화부의 시중이라는 벼슬을 말한다.

증직은 나라에 공로가 있는 사람이 죽은 후에 품계와 관직을 더 올려 줌으로써 갖게 되었던 관직이다.

 

고려시대의 증직

고려 성종 7(988)부터 추은봉증(追恩封贈)이라는 제도를 실시하고, 문무상참관(文武常參官) 이상의 아버지와 조부에게 봉작하였다.

고려 공양왕 3(1391)부터 시행한 제도로 사대부부조추증(士大夫父祖追贈)이란 제도가 있었는데, 2품 이상은 증조까지, 3품 이상은 조부까지, 46품은 아버지에게 추증하였다.

  

조선시대의 증직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제도 이외에 덕이 높은 유학자(儒學者), 절조(節操)를 지킨 신하,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벼슬하지 못한 사람, 효행이 가상한 사람들에게 상당한 품계와 관직을 추증하였다.

종친 및 2품 이상의 문무관의 3대는 아버지는 아들과 같은 품계를, 조부는 손자보다 1품계 아래를, 증조는 증손보다 2품계 아래의 증직을 추증받았다.

당사자가 공신인 경우는 죽은 후 정2품으로 증직이 추증되었다. 또 아버지에게는 다음과 같은 공신 칭호가 추증되었다.

1등공신의 부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

2등공신의 부 순충적덕보조공신(純忠積德補祚功臣)

3등공신의 부 순충보조공신(純忠補祚功臣)

그 외에 보조공신 칭호 이외에 보국승록대부(輔國崇祿大夫)와 영의정이 추증되기도 하였다.

 

<출처 - 족보나라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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