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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
작성자 관리자 [2019-01-24 16: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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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동성 동본의 혈족 전부를 체계적으로 망라한 세보가 등장하기는 1400년대 들어서였다. 그러한 본격적인 족보의 효시로는 규장각(奎章閣)에 보관되어 있는 <안동 권씨 성화보(安東權氏 成化譜)>와 문화 류씨(文化柳氏)<가정보(嘉靖譜)>를 꼽는다.

성화보는 조선 성종 7(1476)에 간행된 족보인데 명()나라 헌종(憲宗)의 연호인 성화(成化) 12년에 간행되었다 하여 '성화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족보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중간본만 전해진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 간행된 족보는 문화 류씨의 가정보란 기록이 있다. 가정(嘉靖)은 명나라 세종(世宗)의 연호로 이때 간행되었다 하여 '가정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가정보는 성화보 보다 86년 늦은 1562년에야 간행되었으니 <연려실기술>의 기록은 잘못된 것이다. 한편 가정보 서문에는 가정보가 발간되기 140년 전인 명나라 영락(永樂) 연간, 즉 조선 세종 때에 이미 문화 류씨의 족보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영락보는 전하지 아니하고 <가정보>가 남아 있다.

문화 류씨의 가정보는 완벽한 체계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외손까지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그 후에 여러 족보를 만드는데 좋은 모델이 되었다.

안동 권씨의 <성화보>에는 서거정(徐居正)이 서문을 썼는데 '우리 나라에는 종법(宗法)과 보첩(譜牒)이 없고, 거가대족(巨家大族)은 있으나 가승(家承)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시대 성종조 이전에는 체계를 갖춘 족보가 없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게 해 준다.

안동 권씨와 문화 유씨에 이어서 파평 윤씨(坡平尹氏)<기해보(己亥譜)> 족보를 간행하게 되었는데 안동 권씨의 <성화보>보다 63년 뒤이고, 문화 류씨의 <가정보>보다는 23년이 앞선 조선 중종 34년 기해(己亥), 1539년이었다. '기해대보(己亥大譜)'라 하는데 이 족보는 당대의 대제학 소세양(蘇世讓)이 서문을 썼다.

몇몇 유력한 씨족만이 지녔던 족보가 더욱 일반화되기는 선조조(15671608)를 고비로 하여 당쟁이 차츰 가열되고 그것이 또 점차 문벌간의 대결이라는 양상을 띠게 되면서 각기 일족의 유대를 공고히 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벌의 결속을 꾀하는 방편의 하나로 족보가 발달하게 된 것은 당연한 추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족보를 둘러싸고 갖가지 폐단이 생기게 되었지만 족보의 본래의 뜻은 어디까지나 자기네의 혈통을 존중하고 동족끼리의 유대를 돈독히 하자는 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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