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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학상식
제목 족보의 뜻과 유래
작성자 관리자 [2019-01-24 16: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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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란 한 종족의 혈연 관계를 부계(父系)를 중심으로 기록한 계보(系譜)와 문벌 기록(門閥記錄)과 선조의 가장(家狀), 행적(行蹟), 묘비명(墓碑銘) 등을 모아 정리하여 꾸민, 이를테면 씨족의 역사책이다. 한 나라에는 그 나라 국민들이 전개한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의 활동을 기록한 국사(國史)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씨족 집단에서는 그 씨족의 구성원들이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국가와 민족과 사회를 위하여 활동한 자취를 기록한 족보가 있는 것이다. 각 씨족의 구성원들이 합친 것을 국민이라 한다면, 그들의 활동 기록인 족보를 합한 것이 국사의 한 부분이 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흔히들 족보는 동양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인즉 구미 각국에도 문화민족의 족보가 있다. 다만 그 규모의 방대함이나 내용의 정밀함에서는 구미의 족보는 우리 나라의 족보와는 비교도 안되는 어설픈 것이다. , 우리 나라의 족보는 동성동본에 속하는 동족의 전부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구미의 족보는 왕실 계통이나 일부 귀족의 것을 빼놓고는 대개 자기 집안의 가계를 간략하게 기록한 가첩(家牒)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서양에서 족보가 발달한 나라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을 꼽을 수 있다. 나라마다 족보학회가 있어 정기적으로 족보학 학술회의를 열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미국의 족보학회는 1895년에 창립되어 미국 내에 수백 개소의 지회를 갖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족보는 동양에 있어서는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후한(後漢) 이후부터 고관을 배출하던 씨족들이 늘어나게 되니 문벌과 가풍을 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고, 이는 벼슬에 오르거나 승진과 혼인 등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에 각 종족은 자기 가문의 문벌과 계통을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족보를 만들게 된 것이다.

()나라 때는 더욱 발달되어 구품중정법(九品中正法 : 위나라의 조조가 실시한 제도로 각 주, , 현에 지방장관과는 별도로 중정을 두어 그 중정이 지방의 인사를 덕행, 재능에 따라 9등급으로 분류하여 중앙의 이부에 추천하는 제도)을 제정하여 관리를 등용하였고,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학문으로서 보학을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남조(南朝)의 제()나라 사람인 가희경(賈希鏡)을 보학 연구의 선구자라고 하는데 3대가 모두 보학에 밝았다고 한다. 그의 조부 가필지(賈弼之)는 각 성씨의 족보를 모아 기초를 닦았으며, 아버지 가비지(賈匪之)도 이를 계속 연구하였다. 그러다가 가희경에 이르러 중국 전토 각 사족(士族)의 족보를 총망라하여 100700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사인 족보의 시초로 가장 정확한 계보라 한다.

이렇듯 족보는 처음에는 관리를 뽑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차차 그 목적은 없어지고 종족을 규합하는 성격으로 바꾸어지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족보를 만들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의 족보는 고려 때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고려 중엽이후로서 김관의(金寬毅)<왕대실록(王代實錄)>, 임경숙(任景肅)<선원록(璿源錄)>이 그 효시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왕실의 친척인 종자(宗子 : 종가의 아들)와 종녀(宗女)까지 기재하는 등 족보의 형태를 처음으로 갖추었다. 고려시대에는 동족간에 족보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에 부자 관계가 밝혀져 있는데 이것이 후대에 나온 각 씨족들이 족보를 만드는 근원이 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 책을 관청에 보관하여 관리를 선발하거나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였다. 또 결혼하는 데에도 이용하였다. 즉 문벌이 낮거나 귀족이 아닌 종족은 과거를 보거나 관리로 뽑히는 데에 많은 차별을 받게 되었으며, 문벌에 차이가 있는 가문과는 혼인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기록문서는 종부시(宗簿寺)라는 관청에서 관리하였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상신록(相臣錄)>, <공신록(功臣錄)> 등이 정비되어 그들의 시조나 부자관계를 일부분이나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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